제목 Louise Bourgeois: Les Fleurs
(부르주아의 드로잉, 용서를 통한 자기치유의 완결)
분류 리뷰 등록일 2010-07-26 조회 18



붉은 색의 드로잉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예술가적 에너지는 올해로 100세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큰 울림을 전달한다. 그러나 그 울림은 긴장으로 팽배한 공격적 성향이 아니라 단단하게 건조된 담백함과 유사한 느낌이며 심지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밝은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20세기 대표적인 여류작가인 부르주아는 지금까지 어떤 하나의 양식이나 사조로서 설명할 수 없는 독자적이고 개성있는 작품세계를 열어왔다. 1911년 12월 25일 파리에서 출생한 부르주아는 소르본느Sorbonne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하였으며, 에꼴 데 보자르?cole des Beaux-Arts와 에꼴 뒤 루브르(E위에 악상붙습니다!주의해주세요!) ?cole du Louvre 그리고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의 작업실 등에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았다. 수학의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체계에 끌렸었으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자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는 부르주아로 하여금 드로잉을 통해 무의식을 이끌어내어 그것을 추상화하는 방식을 터득하게 했다.


드로잉, 유년시절의 트라우마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3점의 브론즈 조각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드로잉이다. 연필, 수채화와 과슈 등의 재료 그리고 에칭, 실크 스크린의 기법 등이 사용된 작품들은 물에 풀어놓은 물감이 천천히 번져나가 듯 이전 작업들에 비해 여유롭고 한층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실 부르주아에게 있어 드로잉은 유년시절의 기억과 함께 좀 특별한 의미를 지닌 매체이다. 대대로 앤틱 타피스트리 사업을 해오던 가정에서 자란 부르주아는, 8살 때부터 타피스트리 도안을 위한 드로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녀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전적으로 트라우마로 채워져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영국인 애인을 아이들의 가정교사라는 명목으로 데리고 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집에서 함께 산다. 그것을 묵인하고 살아가는 어머니와 감정적이면서 가부장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심각한 정신적 충격과 배신을 경험한 부르주아에게 있어 이러한 유년시절의 기억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각인된다.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남성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갖게 만들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작업에 있어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에 이른다. 반면 인내심이 강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모성애에 대한 인식 역시 그녀의 주요 작품을 통해 나타난다.




이러한 유년기에 겪었던 경험에 의한 정신적 외상은 일찍이 그녀의 작품 속에서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과 가정의 문제라는 주제로 드러난다. 그녀의 초기 드로잉에서 보이는 무정형의 이미지들이나 <여성-집Femme Maison> 연작에서 보여지는 인체와 건축물의 비현실적 조합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무의식의 억압된 감정들이 표출된 것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예술적 승화
프로이트는 창조성이 어떤 목적을 가진 본능으로부터 촉발된다고 믿었다. 발달단계에서 어린이들은 본래의 목적을 떠나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다른 목적을 향해 본능을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프로이트는 ‘승화sublimation’라고 불렀는데, 승화는 억압받는 자아의 성적 리비도가 가장 이성적인 형태로 전이된 것이다. 대부분의 지각적 기억은 시각형태로 환치되며, 따라서 억압된 관념은 의식화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유용함이 인정된 상징을 이용하여 승화되고 표출된다. 프로이트는 예술가로 하여금 끊임없이 승화된 작품들을 만들도록 하는 동기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예술가는 그의 내성화된 기질 때문에 만족시키지 못하는 예외적인 본능적 욕구를 갖고 있고,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술가는 신경증의 경계선상에 놓여있는 환상의 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프로이트는 예술가가 신경증에 빠지지 않고 예술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예술가가 강렬한 본능으로부터 에고ego에 에너지가 과잉 충전되기 때문에 그 일부를 예술이라는 환상의 세계로 방출 시킬 수 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루이스 부르주아 역시 자신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통해 아버지란 대상과 남성 가부장적 구조에 환멸을 느꼈으며 이를 작품 속에 표현하게 된다. 다음은 그녀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에피소드다. 어릴 적 부르주아는 어느 날 저녁식사 시간, 빵으로 아버지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한 입 한 입 먹어버린다. 이러한 행동 역시 그녀가 한 가정의 권력자로서 다른 구성원들을 억압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성인이 되어서는 조각작업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감정들을 조절할 수 있었다고 작가는 술회한다. 이와 같은 분노의 표출은 작업 전반에 드러나며, 특히 <아버지의 파괴Destruction of the Father>란 설치작품에서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아버지를 먹는다는 끔찍한 내용을 붉은 조명과 블랙 벨벳으로 직설적으로 연출한 바 있다.



인간애, 부드러운 모성애의 확장
거미로 모성애를 표현해낸 그녀의 대표작 <마망Maman>은 그녀가 갖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드러낸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거미만큼이나 똑똑하고, 인내심 많고, 깨끗하고, 유익하고, 이성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라고 회상하는 부르주아는 여성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인 존재에 대한 생각들을 삶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킨다. 그런 맥락에서 그녀가 주로 소재로 사용했던 집은 탄생의 트라우마가 생기는 곳, 삶, 섹스, 죽음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집은 보편적으로 가족의 구성원들이 보호받는 공간이지만 부르주아에게는 여성이 억압받는 공간, 부조리한 구조로 얽혀있는 공간이 된다. 프로이트는 집을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으로 묘사하면서 독일어 ‘Unheimlich’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기괴함’ 정도의 의미로 번역되는데, 집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의미였던 ‘heimlich’가 어느 순간 비밀스럽고 감춰진 것이자 공포스러운 것으로 뒤집히게 되는 현상, 즉 삶 가운데 있는 죽음, 친숙하면서 낯선 것, 다정하면서도 섬뜩한 것 등과 같이 양가적인 느낌과 현상에 대한 기표이다.
부르주아에게 있어 집이란 사랑의 대상인 어머니와 애증의 대상인 아버지의 대상이 공존하고 겹쳐지는 장소이다. 또한 가족들은 그녀에게 고통의 기억이면서도, 미국으로 떠나온 이후에는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상징화하고 표출한다. 어머니의 자궁은 탄생을 가져오고, 또한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공간을 상징한다. 언캐니하고 기괴한 것은 태초에 우리가 머물렀던 장소를 환기시킨다고 한다. 모성의 공간인 자궁에서 우리는 기괴함을 느끼며 부르주아는 어머니의 몸으로서 집을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여지는 드로잉과 조각 역시 꽃의 형태와 여성의 몸을 구현하면서 모성애, 신체 그리고 욕망 등 기존의 작업과 같은 맥락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같은 주제를 논하고 있으면서도 일면 공격적이었던 모성애에서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성애로 선회한다. 소재에서부터 꽃과 식물 등을 다루며 여기에 붉은 색과 푸른 색 등 단순한 선과 색채를 사용하여 가족의 의미와 보편적인 인간애에 대한 탐구가 그녀 작업의 마지막 여정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꽃 봉우리들은 현재의 그녀의 가족 수대로 꼭 5개씩 한 줄기에 매달려 있다. 가족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끈끈한 관계를 드러냄과 함께 과거 파리에서의 가족이란 구성체가 그녀에게 주었던 고통 역시 한 줄기에 매달린 잎들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었다는 작가의 회환이 느껴진다. 이것은 여성이 지닌 모성애에서 확장되어 작가의 따뜻한 인간애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 인간 본성에 대한 연민과 애정인 것이다.



용서의 몸짓, 아름다운 마무리
예술가들에게 있어 드로잉은 유아기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최초의 방식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궁극의 주제를 핵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종의 방식일 수 있다. 부르주아가 전 생애에 걸쳐 몰두해온 작업은 성, 욕망, 폭력, 복수에 대한 판타지이며 과거의 기억이 갖고 있는 긴장, 공포, 질투에 관한 서사였다. 그것들은 신체적, 감정적, 정신적, 심리적인 다양한 고통들에 대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고통과 맞서서 적극적으로 대면하려던 작가의 자세는 결국에는 모든 것과 화해하는 몸짓으로 자신 스스로를 치유하고 기나긴 여행을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가장 친숙하고 편안한 매체는 그녀를 미술의 세계로 끌어들인 드로잉이었던 것 같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미술을 하나의 형식으로 틀 지우려는 20세기의 보편적 비평의 잣대에서 벗어나 그녀 스스로 자유로운 방식을 택하여 자신의 트라우마를 발전적으로 해소하였던 우리 시대의 드문 작가였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아 우리의 슬픔과 아쉬움이 그녀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로 위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글 정소라 독립큐레이터, 이화여대 대학원 조형예술학부 박사과정 marais8sola@hotmail.com 사진출처 국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