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담배연기 조용한 가운데 저 혼자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만큼 고독한 게 있을까. 담배 연기는 담배 피우는 이의 곁에 가만히 옹송그리고 있다. 좀체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역사 풍경에도 담배가 나온다. 곽재구 시인은 그의 시 <사평역沙平驛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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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정지된 시간, 무거운 공기,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흰 연기. 그 연기는 숱한 사연들을 안고 다시 연기 속으로 흩어진다. 사라진다. 그래서 그립다.
제각각의 행복, 제각각의 불행 담배를 쥐고 있는 사람의 손과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표정은 참으로 다양하다. 어제의 승리자에서 패배자로 전락한 기업가가 연신 뻐끔 담배로 울분을 토하는 표정, 담배가 꼭 남성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표정으로 거침없이 연기를 날리는 원로여성작가, 체포된 살인자가 인생을 마감하는 듯 후회와 절망으로 피우는 담배연기. 입으로 천천히 빨려들어갔다가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 속에는 각자의 행복과 불행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 전민조는 담배 피우는 사진을 찍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언론사 사진기자생활을 하면서 우연하게 노동운동가 김말용씨의 담배 때문에 겪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으로 생각했다. 그는“1950년대 중반 노동운동을 하면서 영등포일대의 기업인들의 미움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새벽에 3명의 식칼을 든 괴한들의 습격을 받고 이들이 여의도 모래사장으로 나를 끌고 가서 구덩이를 파놓고 생매장을 당하기전이었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 대 피고 죽자고 했다. 괴한들은 죽을 사람이 마지막 담배를 요구하니 차마 거절 못하고 들어 주었다. 담배연기를 두 모금 빠는 순간, 벼락같이 괴한들을 향해 폭탄 같은 박치기와 발길질로 걷어차고 탈출을 감행했다”고 했다. 그 후부터 나는 신문, 잡지의 온갖 세상 사람들의 인터뷰에 사진을 찍으면서 담배 피는 인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실제 신문, 잡지의 사진 찍는 일은 인터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정작 담배 피는 사진을 찍어 와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 게재를 하지 않았다. 모든 현장은 기록될 가치가 있다. 나는 그 때 그 현장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수단은 사진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지배한 기록 전민조의 사진은 아름다운 삶만 담는 반쪽짜리가 아니라 죽음도, 어둠도 다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을 볼 때에는 ‘예쁘다’ ‘보기 싫다’ ‘좋다’ ‘나쁘다’ ‘멋지다’ ‘시시하다’는 평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때 그런 순간이 있었음을 우리는 떠올리게 될 뿐이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 사진은 특별히 아름다울 수도 있고 멋질 수도 있다. 또한 기억하기 싫을 만큼 추하고 어리석은 인간성을 상기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의 가장 큰 효용은 그 충실한 기록이 될 것이다. 기억에는 사라진 줄 알고 있었던 지나간 우리 삶의 한 순간이 태양 광선속에 붙잡혀 온전하게 남아있는 기록. 그래서 결국 기억을 지배한 기록말이다.
 김수환 종교인 기자들이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을 취재 갔을 때는 전두환 정권이 광주사건을 총으로 진압하고 언론사를 통폐합시키면서 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 기자들을 무차별로 구속시킬 때였다. 추기경은 세상이 너무 소란스러워 건강에 나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금의 사회는 인권을 옹호할 공권력에 의해 오히려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고 말했다. 1982. 9. 23 명동성당 추기경실
조용필 가수 대한민국 가요계 최초로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닌 가수가 조용필이었다. ‘창밖의 여자’로 단숨에 100만 장이 팔린 인기스타가 어느 날 나타나서 이혼발표를 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고통스런 표정으로 꽁초가 되도록 뻐끔 담배를 피우는 표정을 보니 인기스타도 여자 때문에 괴로워하는 보통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1988. 8. 11 조선호텔

금수현 작곡가 작곡가 금수현(1919~1992)은 수필가, 음악교육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표준음악사전>을 만들기도 했으며 지휘자 금난새의 부친이기도 하다. 인터뷰 도중 결혼했을 때를 회상하며 담배를 많이 피웠다. 1985. 5. 10 용산 자택에서
서정주 시인 “나는 항상 열일고여덟 살밖에 안 된 여드름투성이 숫총각쯤으로 내 나이를 생각하고 철없이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주(1915~2000) 시인은 대화를 하면서 손에서 담배가 떠나지 않았으며 언제나 방문객들에게 맥주 한 잔을 권했다. 1985. 8. 30 남현동 자택
천경자 화가 “건강하게 살면서 그림을 그려야 할텐데 예술가로서 어느 날 한계를 느껴 자살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는 그런 의미에서 이해가 간다. 소설가는 쓰고 화가는 그려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 잘 안 되면 붓을 놓고 멍하니 담배를 피웠다. 화가 천경자였다. 1983. 11. 6 압구정동 자택
토포하우스 기획 초대전 Exhibition Period 5. 19 ~ 6. 1 Venue 토포하우스 제 3전시실 (2층) Tel. 734-7555, 738-7555
글 김윤정 기자 viewss@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