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가는 것과 남겨지는 것 연극 <리빙 Leaving>은 권력을 잃어버린 정치가와 그를 떠나가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체홉의 <벚꽃동산>을 모티브로 삼아 ‘떠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의 매력은 권력과 함께 모든 것을 잃은 전직 총리 리이게르의 황량함과 상실감을 결코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임 후 벚나무로 둘러싸인 국가 관저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전직 총리 리이게르에겐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빈번하다. 리이게르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열심히 전달하고 자신이 얼마나 인간 중심의 정치를 해왔는지를 강조하지만 기자들의 관심은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라 그의 여성편력이나 잡다한 사생활에 있다. 통속적인 대중잡지에나 어울릴 법한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받아 읽고 리이게르는 분노한다. 하지만 그는 기사 때문에 흥분할 여유도 없이 관저를 비우라는 법원의 퇴거 통지서를 받는다. 가족들 모두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새 부관인 끌라인(후에 부총리가 된다)은 현 정부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주면 관저에서의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고한다. 권력을 잃은 정치가에게 노선을 바꾸라는 유혹은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리이게르는 점점 피폐해진다. “개에게 권력을 주어보라. 곧바로 주인을 물것이다.”라며 <리어왕>의 대사를 인용한 리이게르의 절규처럼 부총리가 된 끌라인은 이 관저를 포함한 근처의 동산에 카지노가 있는 거대한 쇼핑타운을 건설한다. 벚나무가 베어지고 가족들은 뿔뿔이 떠난다. 리이게르는 결국 끌라인의 의견을 수락하여 말단 참모가 되기로 한다. “참모라는 지위에서 아마도 나 자신의 이상들을 실현하는 데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변명한다. 리이게르의 애인이자 15년 동반자인 이레나는 리이게르의 여성편력은 용서하며 살았지만 그가 끌라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떠나고 만다. 리이게르를 남자로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지조 있는 지도자로서 존경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리이게르의 참모였던 빅또르는 끌라인의 비서가 되고, 리이게르를 추종했고 그와 은밀히 키스까지 나누었던 여성정치학자 베이는 어느새 끌라인 곁에 붙어 그의 정책에 대해 열심히 질문을 한다. 모두들 자석에 쇠붙이가 붙듯 순식간에 또 다른 권력에 붙어버리고 리이게르는 빈 무대에 혼자 남겨진다. 이때 정원의 벚나무들은 밑동이 잘린 채 하늘로 올라간다. 그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이 너무도 공허하게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다.

다층적 소통구조 이 작품의 구성은 촘촘하지 않다. 갈등 구도도 단순하다. 하지만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유는 중간에 끼어드는 작가의 목소리 때문이다. 목소리는 배우들의 연기를 지시하고 연출에게도 원하는 것을 요구한다. 작가 하벨의 실제 음성인데 연극 진행에 관여할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말을 한다. 연극이 지루해 질 때쯤 “이 연극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객석을 환기시킨다. 무대장치에 대한 설명도 한다. 이 연극의 무대 양편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고 인물들이 이 문을 통해 자주 등, 퇴장을 하는데, 이에 대해 ‘문은 모든 것 뒤에는 항상 무언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줌으로써 맨 마지막의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간접적으로 묻게 되고 이것은 바로 우주와 존재 자체의 신비라는 주제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하여 관객의 철학적 감상을 유도한다. 뿐만 아니라 연극의 결함에 대해 변명하고 작가로서의 번민을 토로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연극은 리이게르의 이야기와 작가 하벨의 이야기로 나뉘게 되어 크게는 이중적인 구조를 갖지만 배우들끼리의 소통, 배우와 작가와의 소통, 그리고 작가와 관객과의 소통이 다층적으로 이루어진다. 내레이션의 극적 기능은 무대 위의 사건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연극에서도 관객이 정치이야기에만 빠지지 않도록 거리감을 조성하지만 그 보다는 관객의 시야를 넓혀주고 관점을 심화시켜 주는 역할 더 큰 것 같다.


이질적인 양식들의 조화로움 이 연극은 내레이션 외에도 다양한 극양식을 활용하는데, 이질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극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사실주의 연극의 틀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 부조리극 형식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리어왕>의 대사를 인용하여 고전비극의 시적인 대사를 과장된 연기로 보여 주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주인공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압축하면서 권력과 인생의 부조리함을 적확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희극적이고 풍자적인 기법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아주 유쾌한 연극으로 만들어 졌다. 특히<벚꽃동산>의 인용은 연극의 구조를 안정감 있게 만들어 주었고 <리어왕>의 패러디는 희극성을 격조 있는 유머로 상승시켰다. 암전 없이 진행되는 무대는 연극의 무대가 아니라 작가의 노트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는 자신의 무대에 대해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관객은 이에 대해 아주 이성적으로 공감한다. 무대가 텅 빈 상태로 시간이 흐르자 작가의 목소리는 “몇 분으로 압축된 세계의 공허”라고 설명한다. ‘특유의 내용, 고유한 메시지를 갖는’ 텅 빈 무대는 작가의 말대로 침묵의 언어가 되었다.
진부한 상징들의 해학성 다양한 극적 장치들이 신선함을 주기는 했으나 잡다한 상징적 표현들은 다소 고루했다. 연극은 천둥과 함께 시작되어 때때로 비가 오고 번개가 치는 궂은 날씨를 보이며 주인공의 상황을 대변해 준다. 오히려 푸른 하늘과 맑은 날씨, 눈부신 햇살 등으로 사건의 상황과 대비시켜 역설적인 효과를 유도할 수도 있었으련만 작가는 아주 직접적이고 단순한 상징들을 계속 제시한다. 사위 역할을 맡은 알빈이 비를 맞고 알몸으로 뛰어가는 장면 또한 모든 것을 잃은 리이게르의 알몸을 상징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레나가 사준 ‘I love you'라고 쓰여있는 모자는 이들의 사랑을 상징한다. 리이게르가 모자를 쓰자 화가 난 이레나는 모자를 벗겨 땅바닥에 던져버린다. 관저에 있던 간디의 흉상은 리이게르가 평생을 인권을 위해 노력했음을 암시하고자 계속 부각되며 정부 소유로 넘어간 흉상을 비서가 리이게르에게 주고 가는 것도 흉상의 의미를 확대하고자 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듯 단순하고 진부한 상징들이 연극에 활력을 준다는 점이다. 익살과 해학의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벨에게 예술이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권력 뒤의 상실감과 허망함을 스스로 달래고 이렇듯 재치 있게 연극으로 풀어낸 그의 재주는 정치적 경험보다는 예술적 체험에서 얻어진 것이리라.
글 서지영 사진제공 LG아트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