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창극 <춘향 2010>(춘향이 옥에 갇힌 이유)
분류 리뷰 등록일 2010-07-27 조회 18


봄의 향기를 내뿜는 공연
2010년 4월 꽃샘 추위가 한창인 때 남산 해오름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이 <21세기 춘향, 창극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춘향가>를 공연했다. 2008년 초연되자마자 연 4만의 관객을 끌어 모았던 창극 <청>의 드림팀(유영대 예술감독, 김홍승 연출, 안숙선 작창, 이용탁 음악감독 등)이 신세대 명창들을 주역으로 내세우고 <춘향 2010>(2010.4.6~4.11, 국립극장 해오름)을 통해 관객들과의 또 다른 만남을 기획했다. 일단 초연의 막은 내렸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완되면서 공연할 작품이기에 지금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을 듯하다. 다만 공연일자와 출연 배우(명창)들에 따라 관객들의 호응이 상이했던 것으로 봐 아직 공연이 무르익은 상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첫날 공연에 대해서는 다수의 관객들이 아쉬움을 표했다면 나흘째 되는 날 공연에서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흡족한 반응을 보이는 등 공연 상태가 고르지 못했다.
<창극 2010>의 명시적인 무대의 특징은 미니멀한 ‘빈무대’에 마치 한 폭의 그림을 펼쳐 놓은 듯하다 이미지가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적색, 황색, 녹색의 테두리가 원근법적으로 배치된 상태에서 장면에 따라 무대의 크기가 조절되는 가운데 배경에 따른 각기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가 빛으로 형상화된다. 적?황?녹색의 테두리는 장면에 따라 그 색감이 다르게 다가왔다.
첫 장면에서는 오방색으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광한루에서 노니는 사람들과 배경의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기보다 현란하고 어지럽게 느껴진다. 더구나 이 장면은 이몽룡이 그네를 뛰는 성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 장면인데, 산뜻한 첫 만남의 느낌이 아닌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황에서 예정된 만남처럼 여겨진다.
적?황?녹색의 테두리가 극 진행과 잘 어우러진 장면은 제2부 7장에서 무명옷을 입고 노동요를 부르며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등장할 때이다. 어사가 된 이몽룡이 춘향을 찾아 남원으로 왔을 때 그곳 관리가 정사를 잘 돌보는지 살피기 위해 농부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은 거방지게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화답할 때 적?황?녹색의 테두리는 농부들의 삶의 애환 그리고 신명나는 노동의 삶을 조명해 주고 있는 듯했다. 현란한 무대 배경이 흰옷 입은 농부들의 삶을 오히려 부각시키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 장면에서는 배경과 등장인물들 간의 색감이 현란하게 충돌하고 있었다면 7장에서는 적?황?녹색의 테두리가 무대 위 배우들을 부각시켜 그들의 신명나는 리듬을 살려내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전통농악대로 변신한 비보이들이 춤 대결을 펼치며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들의 춤이 한국 전통 농악대들의 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신기하고도 놀랍게 여겨졌다. 한국 전통춤과 가장 포스트모던한 춤이 만나 신명나는 퍼포먼스로 어우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7장은 무대 장경과 배우들의 노래와 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민중들의 건강한 삶의 에너지가 잘 표출된, <춘향 2010>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극적인 리듬과 어우러지지 못한 엉성한 서사
<춘향 2010>의 7장이 작품의 극적인 리듬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이 작품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만남-사랑-이별-재회’라는 기본적인 서사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못하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첫 장면은 현란하고 어지러운 무대 장경과 다수의 등장인물들의 정리되지 않은 행위로 첫 만남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강렬한 사랑의 정서가 구현되고 있지 못하다. 진양조와 시창조의 이몽룡 노래는 한창 짝을 그리워하고 있는 혈기왕성한 총각, 그러다 한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 끓어오르는 혈기를 참지 못해 안달하는 남성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기에는 힘이 없다. 극중 이몽룡(왕기철, 남상일, 이광복 분)은 너무도 점잖다 못해 지루할 지경이다. 그리고 성춘향(김지숙, 박애리, 이선희, 이소연 분) 역시 지극히 소극적인 여인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몽룡에게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매력적인 말을 남긴 성춘향이 그와 인연을 맺게 되는 장면이 월매의 허락에 의한 것으로 처리되면서 사랑 장면 자체가 단순해진다. ‘위태로운,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 춘향의 의지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다.
오정숙 본 <춘향가>를 들으면 이몽룡이 춘향의 집으로 가는 데는 일정 정도의 시간이 걸리며 그 사이 춘향을 향한 이몽룡의 애타는 마음이 세세하게 형상화된다. 춘향은 이몽룡을 마음에 두면서도 사랑의 밀고 당기기를 통해 이몽룡이 더욱 자신을 애타게 보고 싶게 만들고 일정한 때가 되자 그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동침을 한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월매가 이몽룡을 사위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춘향 2010>에서는 이 과정에서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애달픔’, ‘사랑의 밀고 당기기’, ‘신분을 초월한 위험한 인연 맺기의 떨림’의 그 어떤 정서의 조각도 발견할 수 없다. 춘향은 소극적인 듯하지만 자기 감정에 솔직하며, 그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속치마에 이몽룡의 맹세를 기록한 이성적인 여인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사대부 이몽룡이 기생의 딸 성춘향을 취한 듯하지만, 내적으로 보면 성춘향은 이몽룡의 맹세를 통해 그를 소유하며, 이를 통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속한 부부라는 공적 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이러한 관계는 신분계급 사회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이몽룡과 성춘향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되고 변사또는 춘향의 공적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월매와 같은 기생 취급을 하게 된다.



<춘향 2010> 긴 이별, 긴 아쉬움
<춘향 2010>에서의 ‘이별’ 장면은 앞선 ‘만남’, ‘사랑’ 장면에 비해 턱없이 길다. ‘만남’과 ‘사랑’ 장면에서 깊은 정서적 울림이 없는 상태에서 관객들은 춘향의 이별의 슬픔에 동감하기 어렵고 특히 귀신 형상의 이미지가 난무하는 무대에서 비수가 꽂힌 듯한 아픔을 경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쑥대머리’를 부르는 춘향은 비록 귀신 형상이지만 그녀의 처연한 슬픔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것이다. 현재의 무대 형상화는 관객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잔혹한 슬픔의 장면도 아니요, 지극히 직설적이고 표현 자체가 박약하다.
<춘향가>의 눈대목의 하나가 ‘어사출도’ 장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춘향 2010>에서는 이 대목에서도 관객들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 이몽룡은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만성고라. 촉루낙시 민루낙이요, 가성고처 원성고라”라는 명시를 통해 천지를 진동시키는 어사출도 장면을 연출하는데, <춘향 2010>에서는 이 장면에서 도창(안숙선, 염경애 분)을 등장시켜 가장 긴장된 장면을 축약시킨 채 바로 어사 신분을 밝힌 이몽롱과 춘향의 만남 장면을 이어 붙인다. 그러나 이 장면은 그렇게 쉽게 생략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이 장면은 <춘향가>에서 해학의 정신 즉 관료들의 비리를 풍자하고 반상계급 속에서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꾀하는 전복, 웃음을 통한 혁명의 정신을 담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이미지가 생략된 춘향과 몽룡의 만남은 정절녀의 만남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극 중에서는 월매에게 허락받은 춘향이 몽룡에게 몸을 허락하고 정절의식을 불사른다는 일관성을 지닐지 모르지만,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 <창극 2010>의 춘향은 보수적인 질서에 갇힌 여인, 그리고 변사또에게 갇힌 여인이 되었으며, 몽룡을 다시 만난 후에는 남자에 갇힌 여인이 되었다.
<춘향가>를 들어보면, 춘향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것은 ‘이몽룡의 아내’라는 신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기생이라는 신분에 가둬두려 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춘향이 사대부 이몽룡의 마음을 허락하고 부부의 연을 맺은 뒤 변사또 대신 죽음을 기다린 것은 그녀에게 자신과 같은 신분의 여성도 사대부를 사랑할 수 있다는 평등의식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춘향이 옥에 갇힌 것은 정절을 지키려 수청을 거절한 이유도 있지만 반상제도의 전복을 꾀하는 평등의식을 지녔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판소리 고전은 깊으며 그 깊이를 표현하기에 창극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장르이다. 다만 <창극 2010>의 스펙터클 무대에는 춘향이 왜 옥에 갇혔는지, 슬프디 슬픈 그 마음이 없다. 축약해야 할 것은 <춘향가>의 긴 사설이 아니라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 김향 연극평론가, 한예종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 
사진제공 rohsh.com
작가약력 연세대학교 문학박사. 연세대 강사. 연극평론가. 드라마투르그.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 저서로 『최인훈 희곡 창작의 원리』, 『손님과 대화-김향 연극평론집』, 『한국 현대문학사』(공저), 『근대계몽기 단형 서사문학연구』(공저),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공저), 『한국현대연극 100년 : 인물사』(공저)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