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작은 연못(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라)
분류 리뷰 등록일 2010-07-27 조회 17


그 날의 진실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1950년 7월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속칭 쌍굴 다리) 속으로 피신한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미군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무참히 살해된 ‘노근리 사건’, 그 슬픈 날의 영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은 연못의 교훈을 기억하지 못하고 60년 간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고 영화는 담담히 말한다.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피난민 속에 민간인으로 위장한 적군이 침투하고 있다는 미확인 정보가 입수됐다. 미군은 저지선으로 접근하는 피난민을 모두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게 되고 무차별한 공중폭격과 기관총 사격을 가해 민간인 300여명을 학살했다. 쌍굴 다리 피난민 중 최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25명에 불과했다.
1999년 미국 AP통신은 당시 미군이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 명령에 따라 학살사건이 발생했다는 진상을 밝혀냈다. 이 보도는 2000년 퓰리처상 보도부문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진실을 부정하던 한국 정부는 2004년에야 겨우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지만 아직도 보상과 위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21세기 대한민국, 아직도 정부는 천안함 침몰 사고를 비밀주의로 함구하며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 이 시기에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은 절묘하다. 철저하게 매몰됐던 노근리 사건의 진실이 발발 50여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듯 이 사고 역시 미궁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그렇게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3년 간의 시나리오 작업, 6개월 간의 촬영 준비, 3개월 간의 촬영, 3년여 간의 후반 작업을 거쳐 영화는 만들어졌다.
영화를 들여다보기 전부터 영화는 이미 그 뒷이야기만으로도 얼마만큼의 감동을 담보해 놓은 상태였다. 평생을 연극에만 종사한 원로 연극인인 이상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처음으로 영화 연출을 맡았다. 무수히 많은 제작사와 배급사에서 거절 당한 탓에 처음 제작이 논의되고 전국 상영되기까지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문성근, 강신일, 김뢰하, 전혜진, 문소리 등 배우들과 전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무보수로 출연했다. 고 박광정은 그의 마지막 영화를 극장에서 채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영화 프린트를 관객들이 직접 구매해 배급에 동참하기도 했다. 영화 속 대문 바위골 사람들처럼 배우들에게 실제 주민 같은 친밀감을 자아내기 위해 배우들의 가족들을 섭외했다. 어느 배우의 금쪽 같은 한 살 짜리 아기부터 70이 넘는 노모까지 스크린에 등장해 생생한 감동을 전달했다.



담담한 진실이 전하는 절절한 감동
영화는 1950년 7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평화로운 시골 마을 노근리를 배경으로 한다. 비록 전쟁 중이라지만 마을 사람들은 매우 한가롭다. 전쟁이 났다고는 하지만 옆집 불구경 하듯 한다. 천성이 느긋한 충청도 시골 사람들은 ‘이러다 빨갱이 세상이 되는 건 아닌가’ 한 편으로는 걱정하면서도 하늘의 뜻에 맡겨 버린다. 노인들은 장기를 두고 아이들은 동요대회 나갈 준비에 한창이고 젊은이들은 농사일을 하며 평상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마을은 미군의 작전지역으로 지정되고 미군들은 이들에게 마을을 떠날 것을 종용한다. 마을 사람들은 장롱, 가마솥, 심지어 칠순 노모마저 지게에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씩 보따리를 이고 지고 줄 지어 어디론가 가던 길은 마치 소풍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미군들이 나타났고 마을 사람들은 얼떨결에 철로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도라쿠(트럭)를 타고 돌아갈 것이라던 희망은 불과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은 채 처절한 절망으로 바뀌었다. 하늘을 빙빙 돌던 비행기는 갑작스레 그들을 폭격했다. 그리고 3일간 2650kg의 총알이, 12만개의 총알이 노근리 쌍굴 다리 인근에 떨어진다.
비극의 중심에는 소통이 부재했다. 미군과 일본군으로 구성된 군인들은 영어와 일본어로 일방적으로 지시했고 시골 마을 사람들이 이들의 지시에 응할 수 없었던 것은 안타깝게도 외국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짱이 삼촌이 더듬거리는 실력으로 일부 통역을 하기는 했지만 그가 죽고 난 후 그 작은 소통의 통로마저 굳게 닫혀 버린다.
영화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간략하다.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 전체라 해도 무방하다. 눈물샘을 쏙 빼놓겠다는 의도도 없어 보인다. 자잘하게 얽힌 극적인 이야기 없이 ‘노근리 사건’ 자체만을 그대로, 비교적 담담히 전달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런 담담함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크게 극적이지도 않은 일상적인 우리의 삶이 전쟁에 의해 얼마나 짓밟히고 파괴될 수 있는지 영화는 알려준다. 그동안 우리는 노근리를 ‘1950년 7월 미군이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서 한국인 양민 300여명을 사살한 사건’이라는 백과사전에 실린 한 줄의 문장, 지식으로만 기억했던 것이다. ‘양민’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거동을 못하는 70대의 노모와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가 있었고 갓난아기와 그 늦둥이를 익사시키고 미쳐버린 아비도 있었고 출산일 임박한 임신부도 있었다는 것을,  전쟁 중에도 숙직 교대할 선생님이 없어서 집에 갈 수 없다는 초등학교 선생님과 그녀를 마음속에 두고 있는 집사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물빛 하늘에는 고래가 헤엄치고 밤하늘에는 별똥별이 진다 
영화는 마치 그날의 상황을 그대로 비추는 듯 보인다. 원경에서 바라본 영상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은 곳곳에 판타지를 등장시켜 이것이 2010년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마을 사람들이 미군들에 의해 강제로 하천 바닥으로 내려가 하룻밤을 보낸 날, 마을 사람들을 지나 산 너머로 떨어진 총알 세례는 마치 별똥별 같았다. 별똥별이 질 때 어디선가 누군가는 죽는다던가. 그 날,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연못을 연상시키는 물빛 하늘에는 어미 고래와 아기 고래가 유유히 헤엄을 친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라는 노래 ‘고래사냥’처럼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마음도 그러했는지 모른다. 실존하지만 마치 신화 속 환상의 동물처럼 보이는 고래처럼 분명히 실재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이 현실을 똑똑히 기억하자고 말하는 듯하다.
동요경연대회 무대에 선 아이들의 모습과 이들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모습 역시 판타지다.
영화 속 초등학교 선생님은 말한다. “니들 사람들이 왜 노래를 하는지 알어? 사람들이 노래  하는 건 싸우지 말자고 하는 거야.” 그렇게 싸우지 말자고, 우리 함께 화음을 맞춰 노래를 하자고, 영화는 도입부와 절정 부분, 결말 부분에서 세 차례에 걸쳐 합창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춘다.
무심히 시간은 지나 가을은 익어가고 살아남은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잔다. 죽었는가 싶었던 꾸리가 살아 돌아오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노래한다. 실제로는 영원히 열릴 수 없었던 1950년 가을의 전국동요경연대회에도 나간다. 아마 그들은 창경원도 갔을 것이다. 아이들은 목청이 터져라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어른들은 그들을 지켜본다. 영화관의 관객들도 그 순간만큼은 동요경연대회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된다.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라. 이것이 이 영화가 내린 특명이다. 그 순수한 외침은 그대로 관객들의 가슴에 가 닿는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박신애(이요원)가 확성기를 들고 다니며 우리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듯, 영화 <작은 연못> 속에서 개비 누이가 “꼭 살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에게 얘기해 달라”고 당부했듯 그들은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잊혀지지 않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기억해야 한다. 이미 142명의 배우와 229명의 스탭들이 노근리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영화를 볼 관객들도, 5000만 국민들도 노근리를 기억할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글 조아라 동양일보 기자,
punky52@hanmail.net
사진 제공 시네드에피